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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1. 15. 00:00<창세기 21:22~34> 풍성함을 주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창세기 21:22~34 |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서 행하여 보이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말씀묵상 |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불안정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사이의 평화 조약 체결 기사는 아브라함이 이삭 탄생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풍성하고 안정된 삶을 허락 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성도가 이 땅에서도 번영과 복락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이 본래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속성이 풍성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은 그것을 실행하실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십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내가 축복에 합당한 자가 되어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상 그 복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려시키시고 성숙시키시기 위해 먼저 고난을 주십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생애가 역경으로 점철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브라함은 안정된 삶을 살아도 되는 성숙함에 이른 것입니다.
22절에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삶이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생각과 행동이 땅에 속해 있는 그들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나그네와 같이 정처 없는 삶을 살았지만 늘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이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이었기에 안정된 삶을 갖게 되었을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지 아닌하고 그랄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헤를 잊지 않고 교만하지 않기 위해 에셀 나무를 심었습니다.
3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에셀나무는 단단하고 생명력이 긴 나무로서 영원을 상징합니다.
이 나무를 심은 것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기념하고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자로서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즉 그는 풍성하게 된 것을 은혜로 여기고 하나님게 더욱 예배의 삶을 드린 것이다.
아브라함의 안정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자의 삶이 대부분 끝없는 방황과 긴장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집. 직장. 결혼. 취미. 등을 누리면서 여유있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바램입니다.
그런데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은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이지 죽을 때까지 끝없는 긴장과 불안에 시달리는 삶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 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식 사고입니다.
그들을 밤부터 하루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밤이 먼저 온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생의 밤이 올때에 소망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아침이 온다는 것입니다.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밤의 시간은 다를 것입니다.
밤의 시간은 우리에게는 영적인 성숙을 위한 훈련의 과정입니다.
그것을 통과하면 풍성한 삶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안정된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기 도 |
우리게게 안정된 삻을 허락하시고 그것을 통해 더욱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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