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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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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2. 3. 00:00

<창세기 32:21~32> 야곱이 이스라엘로

 

 성경말씀 : 창세기 32:21~32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말씀묵상

 

모든 가족들을 얍복강을 건너 보낸 후 야곱은 홀로 그곳에 남습니다.

나루터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며 야곱은 여러 생각에 잠깁니다.

약속의 땅을 앞둔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에 야곱은 하나님과 풀어야 할 인생과 신앙의 숙제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모든 일에 자기가 이겨야만 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모든 일이 되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여전히 교활한 근성이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형 에서와의 화해도 자기 의도대로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야곱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그의 자존심이었고, 무너지지 않은 자기 의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그의 자존심과 의가 철저히 부셔지지 않고서는 진정한 화해와 진정한 신앙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턱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 문턱만 넘어가면 행복과 자유가 있습니다.

야곱도 자신이 마지막 넘어가야 될 관문으로써,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홀로 남아 이 문제의 씨름을 시작합니다. 

자기 내면의 또 다른 나와의 몸부림치는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야곱 속에 있는 옛 자아들이 완전히 깨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 그 자아를 그대로 붙잡고 있으려는 야곱 사이에 씨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합니다.

 야곱이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존심과 욕망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환도뼈를 내리칩니다. 갑작스런 한 순간이었습니다.

환도뼈는 몸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합니다. 지금까지 야곱이 철썩같이 의지하고 기대어 온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렸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의 믿음은 신앙이기보다는 신념이었고 집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환도뼐를 부러뜨려 버리신 것입니다.

그는 이제 여호와의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이 하나님을 붙잡고 축복해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자기 의로 축복을 쟁취하고자 했던 그는 어느 사이 축복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인간 자신의 힘과 머리만 믿고 살아왔던 야곱이 인간의 무기력함과 연약함을 처절하게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는 야곱에게 축복대신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은 한 존재의 속성과 전인격을 대표합니다. 야곱이라고 대답하는 그의 고백 속에 그의 내면으로부터 ‘사기꾼’과 ‘거짓말쟁이’와 ‘지고는 못사는 사람’으로 살아왔음을 토로하게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라는 의미와 함께,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자, 하나님의 방백’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 헷 족속이 자신들 가운데 아름다운 믿음으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23:6)으로 호칭했습니다. 방백은 왕 또는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가 받은 축복은 자기 의지와 야망으로 살아가던 야곱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의 인생으로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씨름해서 이긴 것 같았으나 환도뼈의 부러짐은 야곱이 실상은 패배했슴을 말해줍니다.

자기 생애 속에서 지고는 못살던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패배를 경험합니다.

놀랍게도 야곱은 그 패배를 통해서 새아침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32:30,31).

야곱의 걸음걸이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가는 새 인생의 발걸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거친 손길을 통해서 자기 의를 내세우던 자존심에서 자유해졌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보다 깊이 만나고 은혜를 체험한 사실에 대한 증언입니다.

비록 동터오는 새벽길을 절름거리며 걷지만, 그 야곱 안에는 하나님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날 때, 예물이나 자기 자존심이 우선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신념적 믿음이었던 야곱이 이제 신앙적 믿음으로 변화되는 이스라엘의 새 아침을 시작합니다.

 

가나안으로 귀향하는 야곱의 과제는 형 에서가 가진 오랜 원한을 푸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적 수단과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고자 궁리하지만, 두렵고 답답한 마음만이 그를 엄습했습니다.

밤을 새던 야곱은 에서때문에 두려워하던 마음의 근원이  형 에서가 아닌 자신에게 있음을 께달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께 목숨을 건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는 옛 자아를 죽이는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기도는 승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를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를 부여받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기도를 통하여 이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던 야곱의 인간적 신앙이 철저히 자기가 무너지는 패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로 승리의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절룩거리며 인생길을 걸어갈지라도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이 있을 때 야곱 같은 우리의 인생이 진정한 이스라엘로 만들어져 갈 것입니다.

 

 기     도 

 

 

 

 

환도뼈가 부러지는 체험들을 주시사 

야곱같은 인생들이 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진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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