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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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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2. 8. 00:00

<창세기 34:1~4>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영적 강간의 위험성

 

 성경말씀 : 창세기 34:1~4

 

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말씀묵상

 

야곱의 가정이 이방의 발달된 농경문화와 농경 민족들의 우상숭배에 둘러 싸여 있게 되자 그의 자녀들도 그곳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디나가 동성연애나 성도덕이 문란한 가나안 원주민에 대해 전혀 경계심이 없었던 것이 그가 겪은 큰 불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의 딸들이 줄기는 문화를 즐기기 위해 나갔다가 수치스러운 일을 당합니다.

성경은 그 사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그런데 “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란 문장을 히브리어 원문의 뜻으로 직역하면  “붙잡고 동침하여 천하게 만들었으며” 입니다.

구약에서 ‘동침’ 이란 단어는 서로가 합의했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맺는 성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디나가 강제적으로 강간을 당했기보다는 디나와 세겜 추장 사이에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상태에서 세겜이 디나에게 조르고 졸라 억지로 성관계를 한 것으로 추정케 합니다.

즉 성관계가 반강제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남자가 생각하기를 억지로 성관계를 맺어도 될 것이라고 착각하게끔 그 빌미를 디나가 제공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세겜이 디나를 강간한 후  그녀와 결혼하기를 강력히 원할만큼 디나를 연모한점도 이 추론을 뒷받침 해 줍니다.

즉 평상시에 디나를 연모해 왔기에 그녀를 강간한 것이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디나를 갑자기 덮쳐서 성폭행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마도 세겜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디나를 계속하여 연모해 왔었는데 디나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강제적으로라도 육체적 관계를 맺으면 그녀가 자신의 여인이 될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디나가 평상시 세겜성의 젊은이들과 매우 절친하게 지내왔음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가정의 족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 보니까 그의 자녀들도 영적인 분별력이 없이 생활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디나가 수치를 당한 사건은 분명 디나 자신의 잘못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막아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이 일어나도록 그대로 방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하여 야곱이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서원했던 벧엘로 올라 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의 서원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라면 재정이나 건강 같은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하실수도 있었을텐데 그 방법이 왜 여자의 마음에 평생 상처로 남을 성폭행 사건이었을까요?

 

이것은 야곱과 그의 가족의 신앙 상태가 지금 사단에게 영적 강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2절의 ‘욕되게 하고’ 로 번역된 ‘천하게 만들었으며’ 라는 표현은 이 본문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모세의 생각, 나아가 모세에게 영감을 준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대하는 시각을 말해 주고 것입니다.

즉 야곱의 가정은 이스라엘로 존귀한 존재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 천한 존재같이 되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겜에 살고 있는 야곱의 가정의 영적 상태가, 강간을 당해 천하게 된 것과 같은 그런 수치스러운 상태가 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특별히 악행을 일삼으며 살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세겜에서의 10여년의 세월동안 야곱 집안에 영적인 퇴락을 가져올 괄목할 만한 어떤 패괴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세겜에 도착헤서 처음에 여호와께 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햇습니다. (창33:20)

즉 세겜에서의 삶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삶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세겜에서의 10여년의 시간에 대한 기록은 생략한 채 건너 뛰고 34장 1절에서 바로 디나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한니까?

10여년의 기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든 어떤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대항하여 패역하는 어떤 악한 행위도 그 사이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별 다른 큰 변화없이 매일 매일을 일상에 매몰된 채로 그저 세월이 지났다는 것입니다.

세겜성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그들의 문화와 풍속을 적당히 받아들이며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일컬어 영적 강간을 당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34장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10여년간 세겜에서의 야곱 가정의 영적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계십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이 세상과 간음하는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세겜성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디나가 세겜을 사랑하지 않았듯이 말이죠.

그러나 디나가 세겜에게 빈틈을 보여주고 빌미를 제공하여 강간을 당했듯이 야곱이 세겜성에 계속하여 머물러 살았다는 것이 이미 사단에게 유린당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야곱에게 명령하신 그 말씀을 잊고 그냥 그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야곱이 사단에게 영적으로 유린당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벧엘에서의 서원을 이행하고 조상의 땅 자신의 족속인 이삭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신자가 사단에게 영적으로 유린한다는 것은 윤리 도덕적으로 큰 죄악을 저지르는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 면전이란 의식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일상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것이 영적으로 유린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 영광에 대한 목마름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 없이 그저 그렇게 일상에 매몰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심령은 이미 사단에게 유린당하고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아무 일 없이 평탄 할찌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의 영적상태는 천박하고 수치스러운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기     도 

 

 

 

 

매일의 일상 가운데서 늘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을 갖고 살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 우리의 심령가운데 있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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