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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3. 14. 00:00<창세기 39:1~3> 고난 가운데서의 형통함
성경말씀 : 창세기 39:1~3 |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말씀묵상 |
성경은 다말이라는 이방 여인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유다가문의 이야기에서 형들에게 팔려 고난을 당하는 요셉을 통해 구원받는 야곱 가정의 이야기로 다시 초점을 돌립니다.
성경이 유다와 요셉의 이야기에서 동일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소재는 다르지만 요셉과 유다의 이야기는 자격이 되지 않는 자들을 택하시어 구원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하시는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형제들에게 팔려서 애굽에 끌려 내려간 요셉은 다시 다른 사람의 손에 팔려갑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39:1).
요셉은 졸지에 채색옷을 입었던 영광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로 전락하였습니다.
요셉이 끌려가면서 어떤 처참한 생각이 안 들었겠습니까?
인간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비운과 저주의 인생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 밖의 요셉의 모습이 증언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39:2).
가나안에서의 요셉이 ‘꿈꾸는 자’였다면, 애굽에서의 요셉은 ‘형통한 자’로 표현됩니다.
이 말은 ‘번영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어린 나이에 외국에 종으로 팔린 그를 성경은 지금 형통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로는 형통함이란 내 뜻과 소원이 이루어져 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요셉의 상황은 그가 전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내 몰려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비참한 자리로 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형통하다뇨? 성경은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요셉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통함이란 자신의 뜻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속에서 구현되는 것이 형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질때 이미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감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은 모두 하니님의 섭리임을 생각햇습니다.
때문에 자신에게 처해진 환경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믿고 하루하루를 충심을 다해 살았던 것입니다.
요셉의 하루하루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그 삶이 고난 가운데서도 그를 형통한 자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요셉의 생애 군데군데에서 하나님께서 요셉과 동행하신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애굽에 있는 내내 주어진 환경과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충심을 다해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자신의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마음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간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에게는 어떤 환경이든지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 자체가 그의 삶의 목표가 되어 있었고 이 마음이 모든 고난들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게 한 것입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고난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묵상과 깨달음의 기회가 되엇습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해석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집니다.
고난이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함이란 해석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할 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 도 |
나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형통함이 있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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