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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19. 00:00<창세기 44:14~34 (1)> 하나님과 죄를 감각하는 형제들
성경말씀 : 창세기 44:14~34 |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말씀묵상 |
형제들은 모두 함께 총리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꼬여도 꼬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돌아오는 그들을 “유다와 그 형제들이”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다가 그 형제들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요셉의 집에 이르러 요셉의 앞 땅에 엎드렸습니다.
왜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묻는 총리 앞에 유다가 입을 엽니다.
유다가 하는 말을 주목하면 그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악을 적발하셨다’ 고 말합니다.
지난 번 애굽의 첫번 방문 때 곤경 속에서 형제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은 22년 전의 요셉을 판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 수준으로 그 일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눈 앞에 있는 표면적인 어려움이 해결되면서 마치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다시 한 번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그 숨겨진 문제는 하나님의 눈 앞에서 더욱 분명하게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물론 유다가 하는 말은 직접적으로 은잔을 하나님께서 찾아내셨다는 말이지만 그 의미는 형제들이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자기들의 아버지의 하나님, 할아버지의 하나님 그리고 증조부의 하나님께서 계시며 개입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막연한 인식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중요한 각성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 혼자서 어떻게 하는 것 인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가셔서 그것은 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손 안에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실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그런 장엄하고 거룩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습니까?
내 인생이 완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순간 말입니다.
지금 유다가 이어서 하고 있는 말은 바로 그런 깨달음으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그는 “우리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형제들을 대신하여 말을 하는 자는 유다입니다.
그는 요셉에게 말하기를,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곤경에 처한 것은 베냐민이지만, 그들은 베냐민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들이 베냐민과 함께 공동의 운명을 지고 노예가 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수긍하지 않습니다.
오직 베냐민만 종으로 삼겠다고 하는 요셉의 마음은 여전히 형제들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형제들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했을지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결코 지금 이 상태는 행복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들이 총리의 집에서 식사를 잘 하고 이튿날 아침에 고향으로 떠나던 그 순간과 비교하면 지금 그들이 만난 상황은 빠져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사람이 피상적 만족과 즐거움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처럼 그의 영혼에 비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뭔가가 일어나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 심한 불행과 불만족과 슬픔이나 고통과 함께 일 때가 참 많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인색하신 의도라기 보다는 우리의 죄성이 그렇게 밖에는 깨닫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어려움을 통해서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을 보기 시작하였고 자기들의 인생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실패는 그들 인생에 바꿀 수 없는 축복된 시간이 된 것입니다.
실패 또는 깨어짐은 실로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자신들이 결백하다는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졌을 때, 이 때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기 도 |
우리에게 허락하신 환경을 통해 내 영혼의 실체를 보게 하시고
내 인생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4: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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