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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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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8. 3. 00:00

<출애굽기 13:11~16> 초태생 나귀의 대속이 주는 의미

 

 성경말씀 : 출애굽기 13:11~16

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말씀묵상

오늘 본문에서는 초태생을 드리는 규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초태생을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인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 초태생을 드리는 구체적 실례를 가장 먼저 나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귀는 율법에서 정결지 못한 부정한 것으로 분류되는 짐승입니다.

이것은 구원은 받아서 초태생으로 자신을 드리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의 상태가 여전히 나귀와 같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요.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 라고 합니다.

지금 나귀는 초태생으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즉 대속을 받은 것입니다.  피 바른 대문 안에 있어서 초태생이 죽는 그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지금 초태생으로 드리는 모든 것들은 바로 마지막 재앙에서 살아남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초태생으로 드리는 나귀의 첫새끼는 대속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대속받은 그 나귀 첫 새끼를 다시 어린 양으로 대속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성화에 관한한 우리는 정결한 양이나 소가 아니라 불결한 짐승인 나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화를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효과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대속 사건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소유된 백성답게 살아가야 하는 성화의 삶에 있어서도 그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13절 후반을 보십시요.

어린 양으로 대속하지 않으면 그 나귀 새끼의 목을 꺽으라고 합니다.

성화를 위해 나의 힘으로 열납하려 한다면 영적으로 우리의 목이 꺽여집니다.

죽음을 당합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 있어 오해를 합니다.

성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고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것은 있지만 그것 때문에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면 우리는 앞문엔 기독교 간판을 걸고 뒷문은 불교 간판을 걸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화를 이루기 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과정이 있어야만 십자가의 대속 사건이 날마다 자신의 심령을 인치고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이 없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대속 사건은 구원시점에만 머물게 할 뿐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공로는 유월절의 구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초태생을 드리기 위한 속량물로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온전한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날마다 십자가의 피가 우리 마음에 인쳐져야 할 것입니다.

 

 기     도 

거룩한 영적전쟁을 위해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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