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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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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7. 2. 00:00

<출애굽기 7:8~13> 술법을 통해 강퍅해지는 바로

 

 성경말씀 : 출애굽기 7:8~13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말씀묵상

우리는 흔히 바로가 굉장히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바로를 계속해서 강퍅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바로를 통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 본성을 말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로는 대제국의 왕으로서 자신의 제국 건설에 도움이 되는 노예들을 내 보내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고대제국의 제왕들이 타국의 노예들을 그 정도로 부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가 강퍅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여 하나님 말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1:28-32절을 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이것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생을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 모습입니다.

온갖 죄악은 사형에 해당된다고 알면서도 자기들이 행하고 그것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고 있는 것이 세상의 죄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니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우상이 되고, 금수와 버러지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의 우상들을 보면 강, 개구리, 이, 파리, 독종, 우박, 메뚜기, 태양 이런 것들이 모두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은 상태가 바로 강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대로 버려두신 모든 인간이 다 강퍅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합니까?

우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그것이 바로 강퍅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과연 하나님이 거하시기를 즐거워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려 주시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은 눈감아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마서에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말씀은 그 지식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생각, 우리의 계획 모든 것에 하나님 두기를 좋아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지금 강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나의 마음이 강퍅한지 아닌지를 늘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합리하게 들리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더 옳아 보인다면 그것은 강퍅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하여 강퍅하여지는 것은 자신도 하나님처럼 행할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감히 나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냐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세만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신하들, 즉 박사와 술사들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로 인하여 자기가 하나님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7:11절을 보십시오.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되”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행한 그러한 일쯤은 우리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애굽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7“22)


이것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살수 있다는 인간의 발상입니다.

이것이 과거만이 아니라 과학이 발달하였다는 현대는 더한 것입니다.

뱀을 못 만들어냅니까?

양도 만들어내고 우리나라에서도 송아지를 복제하여내는 것입니다.

이제 곧 사람도 복제하여낼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한다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만 강퍅한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강퍅한 것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착하거나 악하거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고 사는 것이 강퍅인 것입니다.


이렇게 강퍅하게 되도록 바로에게는 애굽의 술사들이 부추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술사들은 누구이겠습니까?

과학 만능주의나 물질만능주의가 모두 현대의 술사들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자들도 결국 애굽의 술사와 같습니다. 자신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애굽의 술사와 같은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우리가 가장 주의하여야 할 것이 종교적으로 애굽의 술사와 같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종처럼 행사하면서 나타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바른 신앙으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일들을 얼마든지 흉내 내는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짜 보석이 진짜보다 더 멋있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애굽의 술사의 이름이 구약에는 없는데 신약에는 나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9절을 봅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사람들이 흉내 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여 자기 부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강권하심과 은혜로 복음을 전하고, 구제를 하고, 봉사를 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하는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건의 모양을 내려는 사람도 이러한 것을 얼마든지 잘한다는 것입니다.

진실 되게 하는 사람보다 더 낫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이란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요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모든 행동은 잘 하면서 오히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가 (딤후3:8) 결국 그 거짓됨이 드러나듯이 진리를 위장하고 가장하여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인 양 위장하는 것들이 심판날에는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모세 때와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거역하도록 하는데 어떻게 거역하게 하는가 하면 모방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의 일꾼 같고 가장 하나님의 일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안에 주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한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자는 그의 정욕이 거꾸러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그의 쾌락이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으며, 그의 감정이 통제받는 것과 그의 마음이 정결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는 “두 세계를 가장 잘 이용할 수 있게”하는 종교를 이용합니다.

“앞으로 올 세상”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 세상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연 모르며 신앙생활 합니다.


세상의 술사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모든 세상의 술사를 멀리하게 하시사

강퍅한 자리에 내려가지 않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7: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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